
조현병의 정의와 특징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던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사고와 감정, 행동 등 인지 전반에 걸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1%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추정되며, 매년 수십만 명의 신규 환자가 진단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현병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최신 보건 당국 자료(2024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정신건강 문제 중 조현병 관련 진단 비율이 약 1.2%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조현병은 주로 환청, 환각, 망상, 와해된 언어 및 행동, 감정 표현 감소 등의 증상으로 진단됩니다. 이 중 특히 환청은 가장 흔하고도 괴로운 증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청이 발생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나 소리가 들리게 되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환자의 일상 기능이 크게 저하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서 혼자 떠올린 생각이 마치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처럼 조현병은 오랜 기간 동안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포함하여 약물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통한 종합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특히 약물치료는 환각, 망상 등 양성 증상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그동안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의 생물학적 원인이 다각도로 연구됨에 따라, 단일 신경물질 조절을 넘어 ‘무스카린 수용체’ 등 다른 기전을 활용하는 새로운 치료 접근법이 꾸준히 모색되고 있습니다.
조현병의 발병 원인은 유전, 환경, 뇌 구조 이상, 신경전달 물질 불균형 등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최근에는 뇌과학 및 뇌전도(EEG) 검사 연구를 통해 환청 발생 기전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가 증가함에 따라, 환자 맞춤형 치료가 점점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조기 진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개별적인 치료 접근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을 줄이고, 환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환청 발생 메커니즘: 최신 뇌 과학적 관점
최근 국제학술지 ‘PLOS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톈싱 뉴욕대 중국 상하이캠퍼스 신경·인지과학과 교수 연구팀의 논문은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환청의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습니다. 연구팀은 환청이 있는 조현병 환자 20명, 그리고 환청이 없는 조현병 환자 20명의 뇌전도를 측정하고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환청 발생에는 크게 두 가지 이상 현상이 관여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첫째는 ‘수반 발사 이상(코러럴 디스차지·corollary discharge)’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뇌의 운동영역은 ‘운동 명령’을 신체에 내리는 동시에, 우리 머릿속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소리를 억제하려는 신호 역시 함께 보냅니다. 이를 ‘수반 발사’라고 부르는데, 정상적인 경우에는 자기 목소리나 생각을 외부 소리와 구분하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 중 환청 증상이 있는 경우, 이 수반 발사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해 자신의 내부 생각이 마치 실제 외부 소리처럼 크게 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원심성 신경 복사(efference copy)’의 이상입니다. 원심성 신경 복사는 뇌가 신체 움직임을 지시할 때 동시에 생성하는 신호로, 우리가 스스로 일으킨 움직임(또는 소리)과 외부에서 들어온 감각 정보를 구별하도록 돕습니다. 환청을 경험하는 조현병 환자는 이 원심성 신경 복사 과정에도 오류가 발생하여, 스스로 만든 감각을 외부 자극과 혼동합니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더 강렬하게 왜곡해 수용하게 되어 ‘환청’이라는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해석입니다.
이 두 가지 기전은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고됩니다. 즉, 수반 발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부 소리를 억제하지 못하고, 원심성 신경 복사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를 외부 소리로 오인하게 됩니다. 이는 최근 뇌 영상 연구와 신경과학적 분석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증명되고 있으며, 향후 새로운 치료법이나 재활 프로그램 개발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7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조현병 치료제
1950년대 이후로 조현병 약물치료는 주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계열 약물, 소위 ‘전형적 항정신병제’가 큰 틀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후 도파민 D2 수용체에 작용하는 ‘비전형적 항정신병제’가 개발되면서, 환각이나 망상 등 주요 증상을 완화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조현병 치료 분야에서 70년 가까이 획기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새로운 기전 약물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말, 미국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개발한 ‘코벤피(Kovenpi)’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는 조현병 치료 역사에서 오랜만에 나온 신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기존 치료제와 달리 무스카린 수용체를 핵심 표적으로 삼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스카린 수용체는 도파민 방출뿐 아니라 인지 및 감정 처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뇌 단백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상시험 결과 코벤피는 조현병 환자의 주요 증상인 환청·망상·환각을 비롯해 주의력 저하나 사고 과정의 혼란 등 인지 기능 저하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도파민 수용체만을 표적으로 하는 전통적 치료제와 달리, 무스카린 수용체 활성화를 통해 뇌 회로 전반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강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일부 환자들에게는 기존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저항성 조현병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치료제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약가와 1일 2회라는 복약 스케줄로 인해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2025년 예상 판매 가격 기준으로, 코벤피의 연간 치료비용이 약 2만 달러(한화 2,600만 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어, 보험 적용이나 환자 지원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실제 임상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스카린 수용체를 활용한 신약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현병 치료 분야에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세대 치료제 개발 동향과 한계
코벤피의 등장은 조현병 치료에서 무스카린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는 ‘차세대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코벤피 외에도 비슷한 기전 혹은 이를 보완하는 여러 신약 후보들이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합니다. 특히 조현병 치료의 핵심 부작용인 추체외로계 부작용(근육 경직, 진전, 운동장애 등)이나 대사 증후군(체중 증가, 당뇨 위험 증가 등)을 줄이면서도, 환청이나 망상 같은 양성 증상뿐 아니라 정서적·인지적 결핍 증상까지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약물 개발에는 높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조현병 환자는 임상시험 참여율도 상대적으로 낮고, 증상 변동이 심해 정확한 평가를 위한 장기 관찰이 필수적입니다. 약물의 부작용 프로파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무스카린 수용체에 초점을 맞춘 신약들은 아직 장기간 대규모 임상에서 광범위한 안정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진료 현장에서의 처방 확대까지는 추가 연구가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약가와 복약 편의성이 꼽힙니다. 코벤피만 해도 비용이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할 수 있고, 하루 2회 복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조현병 환자가 만성질환 형태로 장기 치료를 진행해야 하므로, 값비싼 신약을 꾸준히 투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복용 횟수가 많아질수록 환자의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실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복용 스케줄을 단순화하거나 건강보험 혜택 확대 등을 통한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경과학 분야의 발전과 더불어 조현병의 발병 기전이 다층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환청 메커니즘 규명에서 보듯이, 조현병 치료는 하나의 신경전달물질만 겨냥하기보다, 뇌 회로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점차 속속 등장하는 차세대 약물들이 이러한 방향성을 견인하게 될 것이며, 다가오는 2030년 전후에는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들이 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데이터로 살펴본 조현병: 발병률과 치료 성과
조현병 치료의 효과와 사회적 부담을 수치로 살펴보면 더욱 분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세계 각지에서 보고된 조현병 발병률, 주요 치료제, 연간 환자 치료비용 등의 정보를 요약한 것입니다. (각 수치는 2024~2025년 최신 자료를 반영한 추정치이며, 지역별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항목 | 내용/수치 (예시) |
---|---|
전 세계 유병률 | 약 1.0% (WHO 추정치) |
국내 유병률(추정) | 약 1.2% |
주요 치료제 | 클로르프로마진, 리스페리돈, 올란자핀, 코벤피 등 |
코벤피 연간 약가(미국) | 약 20,000달러 (한화 약 2,600만 원) |
표적 기전 | 도파민 수용체(전통), 무스카린 수용체(신약) 등 |
조현병 환자 10명 중 7~8명은 약물치료와 정신사회적 중재를 통해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거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2023년 메타분석 기준). 환자들이 꾸준히 치료를 유지할 경우, 환청이나 망상과 같은 양성 증상은 상당 부분 개선되고, 사회 복귀 또한 가능해집니다. 반면 복약 순응도가 낮아지면 증상이 재발하거나 만성화될 위험이 높아, 꾸준한 모니터링과 지지가 필수적입니다.
최근에는 조현병 치료의 패러다임이 단순한 증상 경감에서 벗어나, 조기 진단·조기 개입을 통한 ‘회복(Recovery)’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환자의 행동 패턴이나 뇌전도 변화를 실시간 추적·분석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 인지재활 프로그램 등을 병행하여, 약물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환자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접근은 병원이나 커뮤니티 센터 등 다양한 임상 현장에서 큰 장점을 지닙니다. 예컨대, 환자의 상태나 증상 변화를 조기 파악하여 약물 용량을 미세 조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복약 편의성과 약효 사이의 균형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더 나아가 장기 추적연구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향후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치며
조현병은 복합적인 뇌 신경 기전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환청과 같은 증상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 전반에 큰 부담을 안기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최신 뇌전도 연구를 통한 기전 규명과 무스카린 수용체를 표적으로 한 코벤피와 같은 신약의 등장은 치료적 지평을 넓히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여전히 높은 약가, 복약 편의성, 장기 안정성 검증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으나, 조현병 치료의 근본적인 혁신을 이룰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다양한 신약 후보들이 임상시험을 통해 안정성과 유효성을 입증해나간다면, 조현병 환자들의 완화 및 사회 복귀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