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과 의료인 결격사유: 주요 법적 근거
의료인 결격사유 중 정신질환자가 포함된 것은 국내 의료법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되려는 사람이 중대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을 경우 결격사유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공중보건과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 조항의 해석에 따라 “전문의가 의료인으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면허가 유지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존재한다. 이는 해당 의료인이 적절한 치료나 재활 과정을 통해 증상이 안정적이거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렇듯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의 면허 여부는 ‘정신질환의 종류와 중증도’, ‘치료 또는 재활 상태’, ‘전문의의 판단’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법적으로는 ‘치매(F00)’나 ‘조현병(F20)’과 같은 질환이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다.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 파악된 자료에 따르면, 치매나 조현병을 주병상으로 진단받은 의사 총 40명이 실제 진료 행위를 수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법적으로 이들이 결격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가 지속되어 온 것은, 해당 법 조항이 실제 현장에서 엄격히 적용되지 않거나 면허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일반인의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의료인이 과연 환자 진료를 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정신질환이 단일 범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울증부터 조현병, 치매에 이르기까지 진단 범위가 다양하며, 각각의 증상 중 일부는 적절한 약물 치료와 심리·사회적 지원을 받으면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정신질환자가 의료인으로 활동하면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치료 효과가 입증된 의료인의 직업 활동을 무조건 배제하지 않도록 하는 균형 잡힌 법·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최신 데이터로 살펴보는 치매·조현병 의료인 현황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치매(F00)나 조현병(F20)을 주병상으로 앓고 있는 의사 40명이 총 4만9,678건의 진료 행위를 수행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치매를 진단받은 의사 18명이 1만7,669건, 조현병을 가진 의사 22명이 3만2,009건의 진료를 진행했다. 이 수치는 2022년에 보고된 사례와 비교했을 때 줄어든 것처럼 보이나, 여전히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특히 작년의 경우 치매를 앓는 의사 34명이 5만5,606건, 조현병을 가진 의사 27명이 7만8,817건에 달하는 진료를 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황은 단순히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은 즉시 면허가 취소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함부로 내려서는 안 된다는 복합적 메시지를 제공한다. 실제로는 증상이 경미하거나 관리가 잘 이루어져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사례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적절한 치료나 재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진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환자 안전 문제를 간과할 수도 없다.
정신질환 특성상 증상은 개인차가 크며, 특히 조현병의 경우에도 약물 순응도와 사회적 지지 체계, 인지 기능 수준 등에 따라 일상생활 유지 능력이 크게 달라진다. 치매 또한 초기나 경도 단계에서는 일상적 업무 수행이 부분적으로 가능하지만, 중등도 이상의 치매로 진행되면 의사소통과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정신질환이 있는 의료인이 진료를 수행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개별 사례별 진단과 체계적인 관리·감독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일괄적으로 결론내리기 어렵다.
관리 방안의 필요성과 의정 갈등의 영향
서미화 의원이 지적한 대로, 감사원은 이미 작년에 “정신질환 등 의료인에 대한 관리 방안이 미수립된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내부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히긴 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실행 방안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다. 이는 의료계와 정부 간의 의정 갈등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법령상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은 결격사유가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절차를 통해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것인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보다 명확한 기준을 수립하지 않으면, 의료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인 개인의 인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도 보호해야 하지만, 환자의 안전과 의료 신뢰도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시점에 증상이 악화된 조현병 환자인 의사의 경우, 즉각적인 면허 정지나 임시 휴직을 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반면,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고 전문의의 승인을 받은 상태라면 별다른 제재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적 판단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지 않으면, 면허 취소는커녕 실질적인 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복지부와 의료 단체 간의 협의를 통해 제도적 보완책이 제시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갈등이 지속되면 환자 안전을 위한 제도 개선이 늦어지고, 동시에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들의 합리적인 근무 여건 보장 역시 지연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기 몸을 맡기는 의사가 최선의 상태에서 진료에 임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며, 정신질환자 의료인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차별이나 무조건적 배제가 아닌 증거 기반의 평가와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협조해, 투명한 기준과 심사 절차 및 재활·복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권과 전문성: 불합리한 차별 방지 방안 모색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심리사회적장애인 언론 미디어 옴부즈맨 센터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면허를 박탈하는 것은 인권적 관점에서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깊게 뿌리박혀 있으며, 적절한 서비스와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의사든 신체적 질환이 있더라도 상태와 직무 능력에 따라 업무를 지속할 수 있듯, 정신질환 역시 일괄적 기준 대신 개별 상황을 면밀히 평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나 해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 등 주요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약물 치료, 심리사회적 재활 프로그램, 가족 및 지역사회의 지원이 결합되면 안정적인 사회·직업 생활을 영위하는 사례가 상당수 보고되고 있다. 특히 의료인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는 자신의 질환 관리에 대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보 접근성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치료 체계를 갖춘다면 질환이 업무 수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화된 판단’을 누가, 어떻게, 어떤 시점에 진행하느냐는 점이다. 만약 의료인 스스로가 치료나 상담을 기피한다면, 본인의 병력을 공개하기를 꺼려 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다 보면 관련 관리 및 감독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문제 상황이 심화될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의료인이 불이익 없이 전문적 치료와 재활 과정을 거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기적인 상태 평가나 업무 적합성 심사를 통해,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인권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제도 개선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
결국 정신질환을 앓는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소 문제는 ‘환자 안전’과 ‘인권 보장’이라는 상충되는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합의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결격사유로 규정된 질환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환자를 해칠 정도로 증상이 심한가, 혹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임상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와 의료 단체,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명확한 프로세스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 결격사유를 적용하기 전에 “해당 의료인이 전문의의 평가를 통해 진료가 가능하다고 인정받았는지”, “현재 증상이 급성기인지, 만성기이지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인지”, “치료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는지” 등 다각적인 변수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한 번의 심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상태를 재점검함으로써, 질환이 악화되면 신속히 대처하고 다시 호전되면 업무를 재개할 수 있는 유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인식 개선 역시 필수적이다. 질환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치료와 관리를 통해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적 면허 박탈 논리는 결국 정신질환을 향한 편견을 강화하고, 질환을 숨기거나 적절한 치료를 회피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의료 시스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감정적·단편적 논쟁을 넘어,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표: 치매·조현병 의료인 진료 현황 비교 (2022년 vs. 2023년 1~7월)
구분 | 치매(F00) 의사 수 | 치매 진료 건수 | 조현병(F20) 의사 수 | 조현병 진료 건수 | 합계 진료 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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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34명 | 55,606건 | 27명 | 78,817건 | 134,423건 |
2023년 1~7월 | 18명 | 17,669건 | 22명 | 32,009건 | 49,678건 |
(출처: 보건복지부 자료, 국회 제출 데이터 요약)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2022년에 비해 2023년 1~7월 기준 진료 건수 자체는 줄어든 추세이지만, 여전히 치매 또는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의사가 의료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의료인의 업무 수행이 정말로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되는지, 아니면 적절한 치료와 관리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주는 데이터다.
결론 및 전망
정신질환을 의료인 결격사유로 삼을 것인지 여부는 단순히 ‘예, 아니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치매나 조현병처럼 임상적 중증도가 높은 질환이라 할지라도, 적절한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이 제공되면 안정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여러 연구와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반면에, 적극적인 관리 없이 방치된 상태에서 진료가 이뤄지면 환자 안전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는 면허 관리와 관련된 명확한 기준, 정기 심사 제도, 재활 지원책을 마련해 의료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한편, 의료인을 포함해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의 인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이 있으니 무조건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개별적이고 과학적인 상태 평가와 치료 이력에 근거해 면허 유지·정지·취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보건복지부가 내부적으로 관리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하지만, 이르면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제도 보완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양 측면(안전과 인권)을 균형감 있게 고려한 의사결정 체계가 마련될 때, 환자도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고, 질환을 가진 의료인도 차별 없이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받으며 본인의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도 관련 정책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에 대한 법적·제도적 관리와 인권 보장이라는 두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